|
루저녀, 거짓으로 탐하는 세상
요즘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이 감당치 못할만한 일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최근 '루저대란'을 촉발한 이도경씨만 해도 그렇습니다. 굳이 된장녀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여자라면 한번쯤 '수다'조로 해봄직한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그동안 '억압(?)' 받아왔던 남자들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폭발'해 버리네요. 이도경씨는 불행하게도 그 빌미를 제공한거지요. 게다가 말 붙이기도 좋게 '루저'라는 강력한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몸소 '열폭크리'를 터뜨리는 도화선이 된게지요.
당연히 저도 루저입니다만..
값진 희생인가요?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들의 '된장적' 사고와 외모지상주의, 남성의 무기력과 열등감 등.. 모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방송에서 루저녀 논란을 5분이나 다루더군요. 정말 웃겼던 것은 '홍익대 정문'에 그어진 루저 기준선입니다. 빨간색 매직으로 일명 '루저라인'이 그려져 있는데, 그 아래에는 '이하=루저 입장중' 이라는 못생긴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어찌나 발빠른지. 저기에 글을 쓴 '루저'는 아마 까치발로 썼겠지요. 그래서 저렇게 힘든 서체가 나왔나 봅니다.

대학측에서도 참 난감할 겁니다. 나름 학교에서 '이쁘다(?)'고 소문난 여학생이 나가서 학교 위상을 올려줄 것이라 생각 했을텐데, 어이 없게도 핵폭탄으로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수능 전형과 맞물리면서, 홍대는 180cm이하는 전형도 할 수 없다라는 우스개까지 돌더군요.
지금 이도경씨의 기분은 어떨까요. 몇몇 고약한 악플러들은 지금쯤 '자살소동이 일어나면 졸라 재밌겠지'라는 끔찍한 발언까지 서슴치 않고 해댑니다. 심지어 네이버에서 '루저녀 자..' 까지만 쳐도 '루저녀 자살'이라는 자동 완성 검색어가 뜹니다.
대체 뭘 바라고 있는 것일까요. 악플에 의해 몇몇 사람들이 목숨을 던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마녀사냥'의 종착역을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지루한 '루저의 일상'에 고약한 호기심을 부리는 것이지요. 단지 재미로 '이벤트'를 즐기고픈 겁니다. 진정한 루저지요.
이제 루저녀 논란은 좀더 솔직하게 흘러야 합니다. 이도경씨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을 하고 그치게 된다면, 우리가 치루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큽니다. 그럴게 아니라, 이 기회에 솔직하게 성(gender)적 갈등과 역할전복에 대한 열등감을 끄집어내서 폭발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남성의 무기력함과 여성의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가 비판 받아야 합니다.
그냥 웃고 즐기다가 누군가가 벼랑에 몰리고 뭔가 큰일이라도 냈으면 좋겠다는듯이 몰고가면 막장인간, 막장사회 밖에 더 되겠습니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른길이 있다면, '인간성'을 찾는 것이겠지요. 우리 존재의 아름다움과 창조주의 놀라운 계획하심들... (너무 건전 모드로 돌입한건가요..-_-)
얼마전에 라디오에서 '나' 라는 노래가 나오더군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재물 없으나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제가 고등학교 시절 많이 부르고 즐겨 듣던 노래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감흥이 새롭더군요. 이 노래는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의 고백이라 더욱 감동이 됩니다.
열등감과 절망 속의 억지 섞인 자기방어가 아니라, 자신의 본질,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고백이지요. 요즘 우리에게 이런 진지한 성찰이 있습니까.
개개인의 생각이야 알 수 없습니다만, 우리 사회에 대체 '본질'이란 것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자본주의와 시장논리에 익숙해져,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마치 노인네들 '빨갱이' 타령 하듯이 촌스런 이야기로 들릴 뿐이니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마법'처럼 다가온 '이미지'니 '브랜딩'이니 '포지셔닝'이니 하는 단어들을 '긍정'적으로만 볼 게 아닙니다.
마케팅에서 상품의 차별성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략'이니 '최적화'니 '포지셔닝', '브랜딩', '콘셉' 등의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이런것을 '인간시장(?)'까지 가져오면 안되지요. '된장녀'라는게 뭡니까. 결국 자신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 명품 따위의 '가식'으로 위장한 여성을 말하는게 아닌지요. 마케팅 차원에서 본다면, 그 여성은 아주 전략적으로 잘 하고 있는 겁니다. 즉 '최적화(Optiomization)'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기분 나쁜건 그렇게 포장한 '거짓 인간'이 추구하는것이 돈 많고 잘 생기고 키 큰 '엄친아'를 찾는다는데 있습니다. 거짓인 주제에 '진짜배기'를 탐하는 거지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참한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나 눈 안높아~ 평범한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라고 합니다. 그 평범이란게 따지고 보면 '최고의 수준'을 뜻하는 거지요. 못 생기면 안되고, 키 작으면 안되고, 집안 나쁘면 안되고, 차 없으면 안되고, 돈 없으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보통'이나 '평범'이란 단어로 바뀌어서 표현되고 있으니까요.
롤프옌센은 이 세상의 마지막 패러다임이 '드림소사이어티(The Dream Society)'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드림소사이어티란 '꿈과 감성을 파는 세상'이지요. 문화 콘텐츠가 돈이되는 세상, 이미지와 디자인으로 3~4배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세상을 뜻하는 겁니다. '드림'이란 말이 '희망'이란 말을 연상시키고, 뭔가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단어로 해석되어 환타지에 취할수도 있는데, 알고보면 장자의 '호접몽'이랑도 일맥상통 하는 겁니다. 결국 본질을 잃고 꿈속에서 헤매이는거지요.
이제는 '물질적 재화'보다 '가치'를 판매하는 시대다 보니 '드림소사이어티'라는 말이 마케터나 비즈니스맨에게는 '환상적인 블루오션'으로 보여질지 몰라도, 결국은 토갱지병(土羹紙餠 : 흙으로 국을 끓이고, 종이로 떡을 만든다)의 거짓 세상속에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덜떨어지는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구요. 지금쯤 우리가 정신 차리고 진정한 '인생'의 가치관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냐는거죠. (좀 거창합니까) 물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도와주지 않고 자꾸만 'money와 visual'에 집착하게 만들지만요. 인간의 존엄성(尊嚴性)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가치없는 찌질이들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엣지있는' 마네킹이나 '디테일'한 3D 애니메이션 따위가 거룩한 존재로 인정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결론인즉, 서로 존중해주고 아껴주자는 겁니다. 이놈은 이게 못났네, 저놈은 저게 못났네 하다보면 결국 '못난 사회'로 가는거고, 이놈은 이게 잘났네, 저놈은 저게 잘났네 하다보면 '잘난 사회'로 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진정한 '드림소사이어티'로 가야 하지 않겠나는 바람입니다. 뭣 좀 모자라다고 무시 안하고, 인정해주고. 보듬고, 나누고. '착한척(?)' 하면서 살아 봅시다. 이런 가식(假飾)이야 말로 해볼만한 가식이 아니겠습니까.
★ since1998 ⓒ dooholee.com_두호리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