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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2 01:33 2005/09/12 01:33
* 어느 크리스마스 | 03_수필칼럼/수필 - 2005/09/12 01:33
산타클로스일리 없잖아...



내가 기억하는 어릴적 크리스마스 이야기다.

사실 어릴적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별 의미가 없는 날이었다. 우리 동네에 얼굴이 희고 눈이 파란, 한번도 본적이 없는 흰 콧수염을 단 외국인이 다녀갈리 없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게다가 가당치도 않은 빨간옷에다가 화려한 썰매와 동물원에서나 보는 사슴을 타고 말이다.

루돌프란 이름따위 전혀 공감가지 않았고, 게다는 더러운 하천이 흐르는 뚝방옆 작은동네에... 만약 왔다하더라도 썰매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올수 있을까 하는 생각?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별 의미없는 시간이었기에 예전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그 흔한 교회 성탄예배에도 초대받지 못했던 꼬마.

산타클로스의 존재따위 별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외국에는 진짜 산타가 분명 있음을 믿었던 그런 꼬마 시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6살이나 7살때 쯤이었나.
나는 산타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크리스마스. 역시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날이 있었는데, 몇일전 드라이브를 하다가 쌩뚱맞게도 그날이 기억났다.

당시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스쿠루지'나 '구피'친구들이 나오는 디즈니 만화따위를 보여주는 날이었을뿐, TV에 나오는 근사한 칠면조 요리 앞에서 식구들과 파티를 하는 날이 아니었다.
칠면조는 커녕 후라이드 치킨마저 흔하지 않아서 늘 먹던 김치쪼가리에 찬물에 밥말아먹는 시츄에이션이랄까.

크리스마스 이브때 젊은 부모님들은 어땠을까..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뭔가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이랄까. 6살꼬마로서 할수 있는 행동을 했는데, 꼬질꼬질 때가 베어있는 양말을 벽한켠에 박힌 녹슨 못에 걸어두는것. 그걸보고 더 쪼그만 빨간양말을 겹쳐 다는 4살짜리 동생.

저기에 어떤선물을 넣을수 있을까. 뭐 천원짜리 몇장 말아 넣으면 가장 좋은 선물이 될수 있을까마는.

한 9시쯤에 잠들었을거다. 9시면 별 할일없는 그런 시절이니깐. 나름대로 가슴이 콩닥이고 산타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데, 12시가 넘으면 귀신이 나오니깐. 어쩔수 없이 잠들어 버리는 꼬마.

아침에 일어났더니 머리맡에 하얀 상자가 놓여있었다. 동생 머리맡에도 똑같은 상자가.

산타가 다녀간것인가?

상자를 열어보고 6살꼬마는 산타크로스가 아닌 '아빠'임을 강하게 확신한다. 아니 '아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갖다 놓은것임을.. 그것도 내가 아는 '한국사람'이 갖다 놓은것을 확신했다.

하얀 상자안에는 '양과자'가 들어있었다.
밤과자, 그리고 땅콩이 박힌 쿠키..

너무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하얀 상자에 베인 버터와 향기까지도 먹고싶었다.

하지만, 산타크로스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고..

몇가지 의문을 제기하자면 말이다..

첫째, 왜 걸어둔 양말에 넣지 않았는가? 아무리 양말보다 큰 선물이라도 양말에 넣어두는것이 정석이 아닌가?

둘째, 왜 동생과 같은 선물을 줬을까.. 그것도 언젠가 먹어본적이 있는 양과자를..

셋째, 엄마-아빠는 산타와 인사를 했을까? 꼬부랑 미국말로?

이렇게 초라한 박스를 부모에게 전해주기 위해 빨간옷을 입고 화려한 루돌프 썰매를 끌고 이 못사는 동네까지 왔을까.

그리고는 별 기억이 없다 그냥 그렇게 산타의 존재에 대해서 너무 쉽게 냉소해버린 꼬마였다.

그리고 저녁이 기억난다. 저녁에 우리 온가족은 동네에 있는 목욕탕엘 갔는데, 물론 동생은 엄마와 나는 아빠와..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엄마와 동생은 역시나 오래걸렸고, 아빠와 나는 바나나 단지우유를 하나씩 들고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목욕탕 밖을 빠져나왔다. 목욕탕 문앞에 초라한 트리와 전구가 '열심히' 크리스마스를 연출하고 있었다. '징글벨 징글벨' 캐롤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정겨운 겨울 저녁 풍경.

저기 길건너에 흰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는데, 뭔고 하니 '열합(홍합)'을 파는 트럭이었다. 예전에는 이런게 많았다.
한 500원어치를 샀던것 같다. 거의 큰 봉지에 가득가득이다.

집에와서 그걸 풀어놓으니 완전 한 꾸러미다. 큰 대접에 국물을 부어놓고는 바가지에 열합을 담아두고 하나씩 까서 먹었다. 열합 껍데기로는 대접에 부어둔 하얀 국물을 떠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텔레비젼에는 똑순이가 나와 특집방송을 하고 있었다.
역시나 크리스마스는 나와 상관없는 날이었다.
양과자는 한 이틀은 먹었던것 같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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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순이 2005/09/12 05:41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두호리님 글 보다가 문득 어릴적 제 크리스마스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네요. =)


swimmy 2005/09/12 11:19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저도 크리스마스선물에 동네문방구 스티커가 붙여져 있어서..
단번에 엄마아빠가 사온거라 눈치챘었던 기억이 나네요....


희원 2005/09/16 07:31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홍합 너무 맛있었을듯... 아.. 홍합이 땡기는 날입니다.


리모니 2005/09/21 00:49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뜬금없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가네요.
저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 하나라면.. 오빠와 제 머리맡에 있는 상자 두개..
어린시절 오빠는 장손인지라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덕에
욕심이 많았죠.. 그때의 선물 상자 두개의 크기는...
제 머리맡에 있는 것이 더 크더라고요. 오빠가 어거지로 그걸 갖고 제가 작은걸..
같이 풀어보니.. 작은 선물은 BB탄 총, 큰 선물은 여자애들의 로망이라명 로망일까... 작은 화장대? 화장통? 뚜껑에 거울이 달리고 자잘한 악세사리가 들어있는..
전 깔깔 거리며 총을 내가 갖겠다고 우겼었고 오빠는 바꿔달라고 우겼었죠.
제가 미니카 라던가 BB탄 총을 좀 좋아했었거든요 :) 물론 인형도 좋아했구요..
크리스마스 하면 항상 그 기억이 나서 저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하네요 ^^


코끼리 2005/09/21 16:17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12시가 넘으면 귀신이 나오니깐. 어쩔수 없이 잠들어 버리는 꼬마.
↑ 이부분에서 박장대소
ㅋㅋㅋㅋㅋ 어렷을적 전설의 고향을 보려고 이불 뒤집어 쓰고 TV를 보다가
바로 잠들어버린 일화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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