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호리닷컴 ★ Dooholee.com
Since1998 ⓒ Dooholee + BLOG
dooholee@gmail.com
+즐겨찾기에 추가 RSS주소
트위터 / 한RSS에 추가
-두호리 미니홈피 § 프로필


전체 (548)
01_인터넷 (122)
02_육아일기 (34)
03_영화/수필 (152)
04_요리/여행 (80)
05_ PR/마케팅 (29)
06_두호리 (102)
07_시사파일 (28)

2010/03 (2)
2010/02 (7)
2010/01 (2)
2009/12 (2)
2009/11 (5)
OISOO 이외수
Y o z o h
건다운의 食遊記
경찰관이 바라본 세상
다음개발자네트워크
닭요리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두호리의 시선분산
멋쟁이 개그맨 박지선
부창조닷컴
비비천사닷컴
서명덕의 ITview Point
스티키몬스터랩
원동닷컴
윤서인의 조이라이드
이재오 이야기
이재훈닷컴
정책공감
코리안블로그리스트
하늘이의 생각나무



위자드닷컴 추천블로그 | 두호리닷컴 ★ Dooholee.com

2007/03/12 21:22 2007/03/12 21:22
* 두호리 어릴적 이야기 | 03_영화/수필/수필 - 2007/03/12 21:22
Part01 _ 두호리 어린이 : 전설의 악동

User inserted image
나는 공주네집에 살았다. 비가오면 처마밑에서 대야 한가득 비를 받아 그 물로 머리도 감고, 발도씻던 그시절에... 내가 꼬맹이였다. 나는 참 별나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 천방지축으로 동네를 휘저으며 남의 집 서랍을 뒤지거나 장난을 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못 된 동네꼬마였다. 어릴때 부모님은 자주 집을 비웠던터라 가까운 동네 떡볶이 집에가서 주인집 아들놈이랑 함께 어항에 있는 금붕어를 구워먹고는 퉤퉤 뱉으며 맛 없다고 찌질대던 나였다. 학교옆에 보이는게 고물상이고 오후가 되면 아파트 앞마당에서 깡통을 차고 놀았다.

친구들이 내 어릴적 이야길 들으면 무슨 한국전쟁 직후에 살았던 아이의 이야기 같다며 눈물을 흘리며 배를 잡고 웃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기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어릴때 살았던 인지국민학교옆 만평아파트는 아직도 재개발이 안되었다. 그때도 벽에 금이가고 곧 재개발 할것만 같더니 아직도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 얼마전에 가본 비산5동은 왜 그리고 도로가 좁던지, 그 거리를 활보하며 멋부리며 다니던 어릴적 내모습이 멋적다.

방학때 날이 좋으면 동그란딱지를 가지고 집앞에 난전을 펴놓았다. 동네 꼬마들이 와서 "딱지놓고 딱지먹기"에 속아 수많은 만화딱지를 내게 빼앗기던 시절이 생각난다. 난 타고난 사기꾼이었을까. 아니면 영리한 장사치였을까. 국민학교 3학년때 학교에 "뽑기"를 만들어가서 50원씩 받아 경품을 주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진호와 동우와 함께 소년챔프를 따라한 16절지모양의 만화신문을 손으로 일일이 그려 친구들에게 강제로 정기구독 시키던때가 생각난다. 그때 허영만의 망치를 먹지로 따라그리며 겨우 한장 그려놓고 <다음에 계속>이라는 문구를 붙여넣던 기억도 난다.

국민학교 5학년때 최흥섭선생님이 앞문을 닫으라고 하셔서 문을 쾅 닫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교실에서 웃고 난리가 났는데, 내가 빼꼼히 들여다보자 선생님은 나를 풍금으로 데려가 밀대자루로 3대를 때렸다. 밀대자루가 부러졌는데, 나는 영문도 모른체 밖에 나가서 벌을 서야 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만이 내기억에 남아있다.

2학년때 마니또를 했던 공모양은 한의사가 되었고, 5학년때 전학왔던 이모양은 연예인이 됐다더라. 서대구의 전 국민학교를 주름잡고 5000 인지국민학교 학생들을 호령하던 "까스활명수"라고 불리던 킹카는 중학교 이후로 키가 안컸다더라. 하교길에 부모님몰래 고스톱을 배웠던 문방구 상헌이네 집이 생각난다. 500원이 없어졌다며 나를 의심하던 눈초리에 엉엉울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아직도 "대구직할시 서구 비산동" 전설로 남아있다.


Part02 _ 두호리 중딩 : 비운의 육상부

중학교때는 온통 아팠던 기억뿐이다. 고물상옆 초등학교에서 철길옆 중학교로 진학했다. 부모님이 좀더 신경썼더라면 시내 중학교로 갈수도 있었는데, 듣기시험 칠때쯤 꼭 한번 기차가 지나가는 "낭만중학교-_-;"에 다녔다. 이곳은 당시 인문계 진학율이 50%가 안 될 정도로 남달랐다. 텍사스 중학교로 불리기도 한 그 이름도 유명한  "서.부.중.학.교"   ....

어느날 친구 한 넘이 너무 까불락댄다 싶어 공책에다 "결투신청"이라고 적어서 모시에 운동장 씨름판에서 보자고 메세지를 남겼다. 그런데 그넘이 너무 쉽게 결투에 응해서 살짝 쫄았다. 결국 그 시간이 되서 운동장으로 걸어나가는데 어찌나 다리가 후들거리던지, 바람이 너무 많이 분다며 먼저 친구에게 화해를 요청했던 아름다운 시간이 생각난다. 어찌나 협상에 능한지.. -_-;

우리학교 일진은 아주 대구에서도 잘 나가는 일진들이었다. 일진들이 모여서 다른 중학교에 원정도 가고 그랬던 아주 참으로 바람직한 "중교천황"들이었다. 어느날 반에서 좀 친다는 일진 한놈이 잠을 자는데 애들이 많이 시끄럽게 놀았다. 일진놈은 그날 방과후 모두 교실에 남으라고 했다. 학생들은 모두 다 교실에 남았다. 일진놈 짝꿍이 문을 앞뒤로 잠궜고, 아이들은 한줄로 서서 일진넘에게 빗자루로 5대씩 맞았다. 그런데, 나와 서너명은 그넘과 친해서 안맞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 맞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넘이 화장실로 따라오라더니 우리들에게 귓때기를 한대씩 날렸다. 그것이 우정이었던가 -_-;; 그런데 왠지 우리는 고마웠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해에 대구에 '전국소년체전'이 열렸다.
User inserted image
서부중학교는 육상부가 없었는데, 어느날 반에서 좀 뛴다는 넘들 몇몇을 모으더니 육상부를 급조했다. 나도 그 일원이 되었다. 당시 100m에 한 12~14초 뛰었다. 학교에서 스파이크도 주고 고기도 사주고 그러니 공부는 뒷전이었다. 아니, 이것은 학교를 위한 아주 장한 일이었기에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질 않았다. 나는 소년체전 400m계주에 3번째 선수로 출전했고, 미친듯이 빨리 다리는 연습을 해놓고는 바톤을 받을때 너무 오바해서 스파이크로 뒷주자를 찍어버렸다 -_-;;

육상부는 급 해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대구에 또다시 "전국체전"이 유치되었다. 대구시내 모든 고등학교가 '안하려고 한' mass game을 우리는 마치 행운이라도 얻은듯 미친듯이 연습했다. 중3이 하루에 수업을 2시간 듣고 매일 운동장에 나와 찬란한 태극기를 만들기위해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한주에 한두번씩 만나는 여중생들과의 폰팅도 정말 매력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중학교 인문계 진학율이 50%인것도 신기할 정도다.

전국체전을 아니 "전국체전 식전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룬 후.. 우리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열혈공부모드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연합고사를 약 2개월 남겨놓고 몸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로 들어갔다. 들어간김에 입원을 좀 하고 나왔더니, 선생님께서 고등학교에 갈수 있겠냐며, 공고나 상고로 진학할 계획이 없냐며 조심스레 물었는데, 부모님들은 그렇게라도 해달라고 했다는 후문이..(너무 아들을 저평가 하신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사촌형이 인문계로 미리 신청을 해뒀나보다. 그래서 병원에서 급 나와 아무것도 준비 안 된채 연합고사를 치뤘는데, 145점 인문계 컷트라인에 148점을 맞아 겨우 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게 되었다.



Part03 _ 두호리 고딩 : 아름다운 청년


User inserted image
중학교 3학년 말기쯤에 친구넘이 불현듯 교회를 가잔다.
당시에 우리 어머니께서는 팔공산 아래 무당집에 무지하게 자주 찾아가 촛불을 켜놓고 우리아들 건강하라고 기도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간 어느 보살집에서 한참 신을 영접하더니, 나보고 이 친구는 교회에 보내야 한다며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릴 하지 않는가. 함께 갔던 외할아버지도 영문모를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그 다음주에 평소에 교회의 '교'자도 안꺼내던 넘이 "예수큰잔치"하는데 여자애들 많다고 교회엘 가자는거다. 마침 "보살"이 교회에 가라고 하니 집에서도 뭐 반대할일이 아니다. 그래서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되었다.

교회는 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워낙 쑥쓰러운탓에 교회에 적응도 잘 못했는데, 이곳에서 나의 사랑과(S.J) 나의 멘토(T.Y)를 만났다. 수줍게 다가온 짝사랑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녀를 바로 쳐다보지 못해 빙빙 둘러다녔다. 그리고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태영. (나와 동갑이지만, 나보다 한기수 높아 '형'이라고 부른다.) 태영형의 행동 하나하나는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고, 본보기가 되었고 닮고 싶은 모델이 되었다. 그의 익살스러움과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나에게 큰 기쁨이었다.

그가 먼저 대학생이 되고 한때 락에 빠져서 대학교 축제때 술에 취해 우리집을 찾아왔을때 적잖이 실망도 했지만, 곧 따라 들어간 대학이란 자유에서 그를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여튼, 고등학교때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 T와 미친듯한 열병을 앓게한 S.J.

만약 지금 과거로 돌아가라면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만약 수능만 없다면 말이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1993년 전국 최초 수능 전국 수석 배호필군을 배출한 성광고등학교였다. 옛날에는 2부도 있고 그래서 별로 명성은 좋지 않은 학교였다. 이 배호필이란 선배가 전국 수석을 하고 나서 학교 이미지가 조금 바뀌긴 했다. 하지만, 요즘도 대구출신 아저씨들이 "성광고"란 말을 들으면 알수없는 표정을 짓는다. 예전엔 일진들이 손도끼를 들고 다녔다는 소문도 있고 막 그렇다.

꼴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성적으로 고교에 진학한 나는 2개월만에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2학년 3학년 내리 학급서기를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한것도 아니었다. 그냥 조금 착한 고교생이었다. 나는 당시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한참 '예수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새나리'라는 선교중창단에 입단해 매일 성가연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당시 신앙을 회상해보면 너무나 맑고도 순수했다. 다 망가진 286 컴퓨터를 후배들과 웅켜잡고 고쳐달라고 기도를 하고 정말 거짓말같이 고쳐진 컴퓨터를 보며 내손에 초능력이라도 생긴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때 나는 천사와도 같았다. 매일 저녁 야간자습시간에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학급 동료에게 나누어주었다. 반의 모범생부터 꼴통과 일진들도 나를 좋아했다. 심지어 시험전에 꼴통이 나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학교는 미션스쿨이라 기독활동을 하는것이 매우 자유로웠고 모범적인 일이었다. 나는 졸업할때 대구에서 꽤 규모있는 '동부교회' 당회장의 모범표창을 제 1호로 받았다.

나는 친구들을 몇몇 모아 문서선교단체를 만들었다. "울림소리"라는 20p분량의 월간 쪽지를 만들어 대구 시내의 고교생들에게 배포했다. 당시 정기구독자가 2000명을 넘었다. 당시에 "최용덕"이라는분이 만든 "낮엔해처럼밤엔달처럼"이라는 쪽지가 있었는데, 그분은 한 10만부정도씩 발행했다. 나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 그분에게 편지도 썼다. 그분은 나에게 답장도 해주었다. 재밌는 일이지만, 난 울림소리를 통해 'S.J'와의 러브스토리도 은근슬쩍 소설이라는 미명하에 집어넣었다. 여튼 나는 한때 신학도를 꿈꾸던 크리스쳔이었다.

요만큼이 내가 살아온 어릴적 이야기다.


★since1998 ⓒ dooholee.com
글주소 : http://www.dooholee.com/blog/dooholee/918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03_영화/수필/수필 | 트랙백0 | 답글6
이 글의 트랙백 주소는 : http://dooholee.com/blog/dooholee/trackback/918

스물다섯 2007/03/12 21:53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보살집에서 교회보낸 이야기가 정말 와닿습니다 ㅎㅎ
파란만장한 어린시절을 보내셨네요, 잘봤습니다 ^ㅡ^

결혼 축하드려요~~ ^^


miriya 2007/03/13 01:52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금붕어 구워먹고 컴퓨터 고쳐달라고 기도하고 ㅎㅎ
정말 대단했군요. ㅋㅋㅋ


편집장 2007/03/13 09:46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저도 대구직할시 서구에서 비산국민학교를 다녔었지요. ^^;;


프코 2007/03/13 21:45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많이 듣던 동네이름이나 학교 이름을 들으니 반갑네요~
저는 대구직할시 서구 내당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달서구로 바꼈네요.)
알고봤더니 제가 1학년때 황수관박사님이 저희 학교 선생님이셨더군요.
옛날 기억 새록새록 나는 재밌는 글 봤습니다.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라인하르크 2007/03/13 23:44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다음 이야기가 엄청 기대되네요.. 신학도를 꿈꾸던 크리스쳔이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적이 있으면 어른편도 당연히 있는거겠죠? 하하;;


필로티 2007/03/14 05:05 -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익숙한 지명이 나오니 왠지 기분이 좋네요. 그나저나 배호필씨는 요새 뭐하시나 궁금하네요...왠지...전 장승수 씨라고 또다른 수능 스타를 배출한 고등학교 나왔어요.

이름 비밀번호 블로그


 
★ Best View
* 두호리스타일 프로포즈
* 두호리결혼식 힙합축가


홈페이지와 블로그는...
미도리의 온라인 브랜딩 -02/22
하미미씨의 생각
hamimic's me2DAY -02/17
치즈 케익 팩토리
도란도란 빨래터 -01/18
캔(CAN)의 디지털싱글...
외국어와 경품으로 다... -01/03
하와이 여행에서 좋았...
T★B Fantastic Voyage -2009

    follow me on Twitter
    두호리닷컴:::블로그 태터툴즈